[심층 기획] ‘마천루의 그늘’ 홍콩 아파트 화재, 반복되는 참사의 해부학: 구조적 모순과 일상의 위험이 빚어낸 비극1
화려한 스카이라인과 빅토리아 하버의 야경으로 대변되는 국제 금융 허브 홍콩. 그러나 그 눈부신 마천루의 이면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구 밀도와 살인적인 주거 비용이 만들어낸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바로 노후화된 아파트와 기형적인 주거 형태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화재 사고다.
홍콩에서 아파트 화재는 단순한 사고를 넘어, 도시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회적 재난으로 인식된다. 2020년 야우마테이(Yau Ma Tei)의 한 주상복합 건물에서 발생해 7명의 목숨을 앗아간 화재부터, 최근 조던(Jordan) 지역의 뉴럭키하우스 화재까지, 잊을 만하면 터지는 대형 인명 피해는 홍콩 시민들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남기고 있다.
왜 홍콩의 아파트 화재는 유독 치명적이며, 왜 근절되지 않는 것일까. 본지는 홍콩 아파트 화재의 원인을 도시 구조적 측면, 주거 환경의 특수성, 그리고 생활 습관 및 제도적 한계라는 다각적인 시각에서 심층 분석했다.
화재

1. 도시의 역사적 유산: 노후화된 ‘당러우(唐樓, Tong Lau)’와 화재 취약성
홍콩의 구도심, 특히 구룡반도의 야우침몽(야우마테이, 침사추이, 몽콕) 지역이나 홍콩섬의 완차이, 셩완 지역을 걷다 보면 현대적인 빌딩 숲 사이로 낡고 빛바랜 저층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1950~70년대 급격한 인구 유입기에 지어진 이른바 ‘당러우(唐樓)’라 불리는 홍콩식 테네먼트(tenement) 건물들이다.
이 건물들은 홍콩 화재 위험의 가장 근본적인 배경을 이룬다. 첫째, 건축 당시의 소방 안전 기준이 현재와 현격히 다르다. 1987년 이전에 지어진 많은 건물은 스프링클러 시스템이나 자동 화재 탐지 설비가 의무화되지 않았던 시기의 산물이다. 따라서 초기 진화에 필수적인 설비가 전무한 경우가 허다하다.
둘째, 건물의 구조적 한계다. 대부분 엘리베이터 없이 좁고 가파른 단일 계단에 의존하는 구조는 화재 발생 시 수십 세대 주민들의 유일한 탈출구가 된다. 연기가 계단을 타고 굴뚝처럼 치솟는 ‘연돌 효과(Stack Effect)’가 발생할 경우, 이 유일한 탈출구는 순식간에 죽음의 통로로 돌변한다.
셋째, 주상복합의 위험성이다. 저층부에는 식당, 상점, 창고가 위치하고 상층부에는 주거 공간이 있는 혼재된 용도는 화재 위험을 배가시킨다. 식당 주방의 화기 사용, 상점에 적재된 가연성 물품들은 언제든 대형 화재의 불씨가 될 수 있으며, 상업 시설의 복잡한 구조는 거주민의 대피 동선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2. 화재의 화약고: ‘劏房(Subdivided Flat)’이라 불리는 기형적 주거 공간
홍콩 아파트 화재 원인을 논할 때 가장 핵심적이면서도 비극적인 요소는 바로 ‘劏房(광둥어 발음: 텅펑)’, 즉 ‘쪼갠 방’으로 불리는 불법 개조 주거 형태다. 살인적인 집값을 감당할 수 없는 저소득층, 이주 노동자, 노인들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 주거 형태는 화재 발생 시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직행열차’와 같다.
‘劏房’은 본래 하나의 주거 유닛(예: 방 2개, 화장실 1개, 주방 1개의 50㎡ 아파트)을 얇은 합판이나 석고보드 등으로 벽을 세워 3개에서 많게는 7~8개의 독립된 초소형 주거 공간으로 쪼갠 것을 말한다. 한국의 ‘쪽방촌’과 유사하지만, 고층 아파트 내부에 수직적으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위험성은 더욱 크다.
이러한 불법 개조는 심각한 소방 안전 문제를 야기한다.
- 피난 통로의 차단: 원래 설계된 비상구로 향하는 복도를 개조된 방들이 가로막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미로처럼 변해버린 내부 구조 속에서, 화재 시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로 탈출구를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 내화 성능의 부재: 공간을 나누기 위해 사용된 저렴한 건축 자재들은 내화성이 전혀 없는 경우가 많다. 화재 발생 시 이러한 칸막이벽들은 불길을 막아주기는커녕 오히려 불쏘시개 역할을 하며 유독가스를 내뿜어 인명 피해를 키운다.
- 환기 시설의 부족: 창문이 없는 방을 억지로 만들어내다 보니 환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는 화재 시 연기가 외부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내부에 급격히 차오르게 만들어 질식사의 위험을 높인다.
홍콩 정부 추산으로 약 20만 명 이상이 이러한 환경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은, 홍콩 전역에 수만 개의 시한폭탄이 설치되어 있는 것과 다름없음을 시사한다.
3. 과부하 걸린 일상: 전기적 요인과 생활 속의 위험
노후 건물과 기형적 주거 구조가 화재를 키우는 ‘하드웨어적’ 원인이라면, 실제 불꽃을 일으키는 ‘소프트웨어적’ 원인은 거주민들의 일상 속에 숨어 있다. 가장 주된 원인은 전기 과부하와 배선 문제다.
앞서 언급한 ‘劏房’의 경우, 본래 한 가구가 사용하도록 설계된 전기 회로를 여러 가구가 나누어 쓰게 된다. 덥고 습한 홍콩의 기후 특성상 좁은 방마다 에어컨, 제습기, 전기히터 등 전력 소모가 큰 가전제품이 24시간 가동된다. 여기에 문어발식 멀티탭 사용이 더해지면, 낡은 옥내 배선이 감당할 수 있는 허용 전류치를 초과하게 되고, 이는 전선 피복의 과열 및 발화로 직결된다. 실제로 많은 화재 현장에서 녹아내린 콘센트와 합선된 전선 뭉치가 발견되곤 한다.
홍콩 특유의 생활 문화도 화재 위험 요소다. 좁은 주방에서 강한 화력을 사용하는 중식 조리 과정 중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발생하는 식용유 과열 화재가 빈번하다. 또한, 가정 내 제단(祭壇)에 향을 피우거나 촛불을 켜두는 문화, 그리고 여전히 높은 실내 흡연율 등은 부주의로 인한 화재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좁은 공간에 가재도구와 의류 등이 밀집해 있어 작은 불씨가 순식간에 대형 화재로 번지기 쉬운 환경이다.
4. 막혀버린 생명선: ‘방화문’의 역설과 복도의 적치물
화재 발생 시 생사를 가르는 골든타임을 놓치게 만드는 또 다른 주범은 역설적이게도 ‘방화문’과 관련된 잘못된 습관, 그리고 복도 관리 부실이다.
홍콩의 많은 아파트, 특히 복도식 아파트의 거주민들은 환기와 통풍을 위해 현관문이나 복도의 방화문을 열어두는 경우가 많다. 방화문은 화재 시 화염과 연기의 확산을 막아주는 핵심적인 안전 장치다. 그러나 이것이 열려 있음으로 인해 한 세대에서 발생한 화재의 연기가 계단실과 복도를 타고 상층부로 급속히 확산되어, 대피하려는 이들의 퇴로를 차단하고 질식사를 유발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 덥고 습한 기후를 견디기 위한 일상의 습관이 화재 시에는 치명적인 독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공용 공간인 복도와 계단실에 개인 물품을 적치하는 문제도 심각하다. 좁은 집안에 둘 곳 없는 자전거, 유모차, 신발장, 심지어 폐지나 재활용품까지 복도에 내놓는 경우가 많다. 평소에는 통행에 불편을 주는 정도지만, 화재 시에는 어둠 속에서 대피하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이 되며, 심지어 불길을 옮기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소방 당국의 지속적인 단속과 계도에도 불구하고, 만성적인 공간 부족에 시달리는 주민들에게 이는 쉽게 고쳐지지 않는 관행이다.
5. 맺음말: 구조적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 한, 비극은 반복된다

홍콩의 아파트 화재는 단순한 ‘안전 불감증’의 결과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복합적인 원인들이 얽혀 있다. 이는 세계 최고의 부동산 가격이 만들어낸 주거 빈곤의 문제, 도시 개발의 역사 속에서 누적된 노후 인프라 문제, 그리고 고밀도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시민들의 고단한 삶의 방식이 충돌하며 빚어낸 구조적인 재난이다.
홍콩 정부는 대형 화재가 발생할 때마다 노후 건물에 대한 소방 안전 검사를 강화하고, 불법 개조 주거지에 대한 단속을 천명한다. 최근에는 소방 안전 조례를 개정하여 노후 건물 소유주들에게 현대적인 소방 설비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막대한 비용 부담과 복잡한 소유권 문제로 인해 실제 이행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근본적인 해결책인 양질의 공공 주택 공급과 주거 환경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이 위험천만한 ‘劏房’으로 내몰리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홍콩의 화려한 마천루 뒤편에서 화마(火魔)는 언제든 다시 고개를 들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홍콩의 낡은 아파트 어딘가에서는 과부하 걸린 전선이 위태롭게 열기를 내뿜고 있을지 모른다. 이는 홍콩 사회 전체가 함께 풀어야 할 무겁고 시급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