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 Insight Column
제국의 부동산과 거래의 기술:
그린란드 관세 파동이 남긴 것
4일간의 ‘동맹국 인질극’이 보여준 트럼프 2기 외교의 본질과 북극의 거대한 체스판
목차 (Table of Contents)
1. 서론: 96시간의 외교적 스릴러, 그 이면의 진실
국제 외교 무대에서 4일, 즉 96시간은 찰나의 순간일 수도, 영겁의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덴마크를 향해 전격적으로 선언했던 ‘고율 관세 부과’ 방침이 나흘 만에 철회된 사건은 겉보기에는 해프닝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코펜하겐의 관료들은 지옥을 맛보았고, 전 세계 동맹국들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공포를 경험했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무역 불균형이었으나, 그 이면에는 ‘그린란드(Greenland)’라는 거대한 얼음 섬을 둘러싼 제국적 욕망이 꿈틀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무역 분쟁이 아닙니다. 이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추구하는 ‘거래주의적 현실주의(Transactional Realism)’의 결정판입니다. 원하는 것(그린란드 내 이권)을 얻기 위해서라면, 70년 넘은 나토(NATO) 동맹국의 경제적 심장부(노보노디스크, 레고, 머스크)를 인질로 잡고 방아쇠를 당기는 시늉을 서슴지 않겠다는 명확한 메시지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번 철회를 두고 “덴마크가 승리했다”거나 “트럼프가 물러섰다”고 평가절하하지만, 이는 사태의 본질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관세는 철회된 것이 아니라,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진 ‘장전된 총’으로서 잠시 내려놓아졌을 뿐입니다. 본 칼럼에서는 이 4일간의 소동이 함의하는 미국의 북극 전략과 자원 안보, 그리고 동맹국들에게 던지는 묵직한 경고를 심층적으로 해부해 보고자 합니다.
2. 욕망의 역사: 미국은 왜 150년간 그린란드를 탐했나?
트럼프 대통령이 2019년 1기 집권 당시 “그린란드를 사고 싶다”고 했을 때 전 세계는 비웃었습니다. 덴마크 메테 프레데릭센 총리는 이를 “부조리하다(Absurd)”고 일축했고, 외교적 결례라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역사를 되짚어보면, 미국의 그린란드 매입 시도는 트럼프의 즉흥적인 발상이 아니라 150년 넘게 이어져 온 미국의 일관된 지정학적 목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그린란드 매입 시도 연대기
- 1867년
국무장관 윌리엄 수어드(William Seward): 알래스카를 러시아로부터 매입한 바로 그 해, 수어드는 그린란드 매입 가능성을 타진했습니다. 그는 북미 대륙을 양옆에서 감싸는 전략적 요충지로 그린란드를 지목했습니다. - 1946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필요성에 따라 덴마크에 1억 달러(금괴)를 주고 그린란드를 매입하겠다고 공식 제안했습니다. 당시 덴마크는 이를 거절했지만, 대신 툴레(Thule) 공군기지 사용권을 내주었습니다. - 2019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대규모 부동산 거래”라며 매입 의사를 공개 천명하고, 덴마크 방문을 전격 취소하는 등 외교적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미국이 이토록 그린란드에 집착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지리적으로 그린란드는 북미 대륙 방어의 최전선이자, 유럽과 러시아를 잇는 길목입니다. 과거에는 소련의 폭격기와 미사일을 탐지하는 조기경보 기지로서의 가치가 컸다면, 21세기에는 중국의 부상과 자원 전쟁이라는 새로운 문법이 더해졌습니다. 즉, 그린란드는 단순한 땅이 아니라 ‘패권 유지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플랫폼’인 것입니다.
3. 희토류 전쟁: 중국의 목을 조이기 위한 필수 조건
이번 관세 위협의 가장 강력한 동인은 안보 경제학, 그중에서도 ‘희토류(Rare Earth Elements)’ 공급망 문제입니다. 현재 전 세계 희토류 생산과 정제의 80~90%는 중국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F-35 전투기, 버지니아급 핵잠수함, 전기차 배터리, 스마트폰 등 첨단 산업과 군사 무기에 필수적인 이 자원을 중국이 무기화할 경우, 미국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됩니다.
그린란드는 ‘희토류의 사우디아라비아’로 불릴 만큼 막대한 매장량을 자랑합니다. 특히 남부의 크바네펠트(Kvanefjeld) 광산은 세계 최대 규모의 희토류 및 우라늄 매장지로 평가받습니다. 문제는 이곳의 개발권을 두고 중국 기업들이 이미 깊숙이 침투해 있다는 점입니다. 중국의 성허자원(Shenghe Resources) 등은 그린란드 광산 지분을 확보하며 북극권 자원 선점에 공을 들여왔습니다.
미국 입장에서 덴마크의 ‘미온적인 태도’는 곧 중국의 확장을 방치하는 것으로 비쳤을 것입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덴마크에 관세를 들이대며 요구한 것은 단순한 무역 수지 개선이 아니라, “그린란드 자원 개발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 기업에 우선권(Exclusivity)을 달라”는 강력한 최후통첩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번 관세 철회의 이면 합의에는 분명 그린란드 자원 개발에 대한 미국의 참여 보장이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4. 북극의 그레이트 게임: 얼음 녹은 바다 위 군사적 긴장
기후 변화는 아이러니하게도 북극을 ‘죽음의 얼음 바다’에서 ‘기회의 황금 항로’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빙하가 녹으면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북극 항로가 열리고, 이에 따라 북극해의 전략적 가치는 폭등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이미 북극권에 수십 개의 군사 기지를 재건하고 쇄빙선 함대를 확충하며 ‘북극의 맹주’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중국 역시 ‘빙상 실크로드’를 주창하며 북극 이사회 옵저버 자격으로 영향력을 확대 중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대응은 늦었습니다. 그린란드 북서부에 위치한 미 우주군 툴레(Thule) 공군기지(현재는 피투픽 우주군 기지로 명칭 변경)는 미국 본토를 향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탐지하는 핵심 자산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미국은 그린란드 전역을 감시 정찰의 거점으로 삼고, 러시아 잠수함의 대서양 진출을 차단하는 GIUK 라인(그린란드-아이슬란드-영국)을 강화해야 합니다.
트럼프의 관세 위협은 덴마크가 그린란드의 방위비 분담을 늘리고, 미군의 활동 범위를 확장하는 데 동의하도록 압박하는 수단이었습니다. 덴마크는 인구 580만 명의 작은 나라로서 그린란드의 광활한 영토와 영해를 홀로 방어할 능력이 없습니다. 미국은 이 틈을 파고들어 “우리가 지켜줄 테니, 권리를 내놓으라”는 식의 거래를 강요한 것입니다.
5. ‘노보노디스크’ 인질극: 덴마크 경제의 급소를 찌르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미국의 공격 대상이 덴마크 경제의 아킬레스건이었다는 점입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위협의 타겟을 모호하게 두지 않고, 덴마크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 기업들을 정조준했습니다.
| 기업명 | 경제적 위상 및 취약점 | 관세 위협의 파급력 |
|---|---|---|
| 노보노디스크 (Novo Nordisk) | 덴마크 시가총액 1위이자 유럽 시총 1위 기업. 비만치료제 ‘위고비’ 매출의 대부분이 미국 시장에서 발생. 덴마크 GDP 성장의 대부분을 견인. | 미국 시장 접근 차단 시 기업 존망 위기. 발표 직후 주가 급락 및 덴마크 크로네화 환율 불안정 초래. |
| 레고 (LEGO) | 세계적인 완구 기업이자 덴마크의 문화적 아이콘. 미국은 레고의 최대 소비 시장 중 하나. | 연말 쇼핑 시즌을 앞둔 시점에서의 관세는 가격 경쟁력 상실을 의미. 상징적 타격이 큼. |
| 머스크 (Maersk) | 글로벌 해운 물류의 거인. 미-중 무역 분쟁 및 글로벌 관세 전쟁에 가장 민감한 산업군. | 미국 항만 이용 제한이나 관세 부과는 글로벌 물류 네트워크 전체의 마비를 의미. |
특히 노보노디스크에 대한 위협은 치명적이었습니다. 덴마크 경제는 최근 ‘노보노디스크 착시’라고 불릴 만큼 이 한 기업의 성장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 점을 정확히 간파했습니다. “그린란드 문제에 협조하지 않으면, 너희 나라를 먹여 살리는 기업을 무너뜨리겠다”는 협박은, 군사적 위협보다 더 빠르고 강력하게 덴마크 정부를 굴복시켰을 것입니다. 이는 경제와 안보를 분리하지 않는 지경학(Geoeconomics)적 공격의 교과서적인 사례입니다.
6. 벼랑 끝 전술의 해부: 관세 철회의 진짜 조건은?
4일 만의 철회(또는 보류) 발표는 덴마크 정부가 미국의 요구사항을 수용했음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X)를 통해 “생산적인 대화”를 언급했습니다. 외교적 수사(Rhetoric)를 걷어내면, 덴마크가 내놓은 ‘양보 꾸러미’는 다음과 같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
그린란드 자원 개발의 ‘미국 우선주의’ 수용: 중국 자본의 신규 진입을 불허하고, 미국 및 서방 기업의 컨소시엄에 독점적 지위를 부여하는 비공개 양해각서(MOU) 체결 가능성. - 🛡️
방위비 분담금의 획기적 증액: 덴마크의 NATO 방위비 분담금을 GDP 대비 2% 목표보다 조기에, 더 높게 달성하겠다는 약속. - ✈️
북극 작전권 확대: 미군의 그린란드 내 공항 및 항만 이용 권한을 대폭 확대하고, 새로운 레이더 기지 건설 등을 용인.
트럼프의 ‘미치광이 이론(Madman Theory)’은 이번에도 적중했습니다. 상대방이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범위의 위협(동맹국에 대한 무차별 관세)을 가함으로써 공포를 극대화하고,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의 양보를 얻어내는 전략입니다. 덴마크는 4일 만에 백기를 들었고, 트럼프는 ‘관세’라는 카드를 쓰지 않고도 원하는 것을 얻은 뒤 유유히 카드를 거둬들였습니다.
7. 한국에 주는 경고: 동맹의 가치 vs 청구서의 가격
남의 나라 이야기로 치부하기엔 이번 사건이 한국에 던지는 함의가 너무나 엄중합니다. 덴마크는 한국전쟁 당시 병원선 ‘유틀란디아호’를 파견한 혈맹이자, 나토의 모범적인 회원국입니다. 그런 덴마크조차 미국의 국익(그린란드) 앞에서는 가차 없이 경제적 공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한국에게 주는 시사점은 명확합니다.
첫째, 방위비 분담금 협상(SMA)에서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나 감축뿐만 아니라, 한국산 자동차나 반도체에 대한 ‘관세 폭탄’을 연계시킬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안보는 안보, 경제는 경제”라는 분리 대응 논리는 트럼프 시대에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둘째, 반도체 보조금 및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한국 기업들이 ‘인질’이 될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미국 투자 약속이 조금이라도 지체되거나 미국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노보노디스크가 겪었던 주가 급락의 공포가 한국 증시를 덮칠 수 있습니다.
셋째, 예측 불가능성의 상수화입니다. 어제까지의 합의가 오늘 트윗 한 줄로 뒤집힐 수 있는 것이 트럼프 2기의 외교입니다. 한국 정부와 기업은 ‘플랜 B’를 넘어 ‘플랜 C, D’까지 마련해 두어야 합니다.
8. 결론: 각자도생의 시대, 순진한 외교는 끝났다
그린란드 관세 파동 4일 천하는 해피엔딩이 아닙니다. 그것은 ‘규범에 기반한 국제 질서(Rules-based Order)’가 무너지고, 철저한 ‘힘의 논리와 거래(Transaction)’가 지배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서막입니다. 미국은 더 이상 ‘선의의 패권국’으로 행동하지 않으며,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동맹국의 팔을 비틀고 주머니를 터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덴마크는 96시간의 악몽을 통해 값비싼 수업료를 치렀습니다. 이제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다음 타겟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동맹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 아니라, 냉철한 국익 계산과 어떠한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경제·안보적 기초 체력(Fundamental)입니다. 그린란드의 차가운 바람은 멈췄지만, 그 한기는 오랫동안 세계 경제를 감돌 것입니다.
🙋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 (FAQ)
Q. 정말로 미국이 관세를 철회한 것이 맞나요?
A. 정확한 표현은 ‘무기한 보류(Indefinite Suspension)’에 가깝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덴마크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거나 태도가 변했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서랍 속에 넣어둔 관세 카드를 다시 꺼낼 수 있습니다. 이는 협상 상대방의 목줄을 쥐고 있는 상태를 유지하려는 전형적인 전술입니다.
Q. 그린란드 주민들은 미국의 매입을 원하나요?
A. 대다수 그린란드 주민과 자치 정부는 이에 강력히 반대합니다. 그들은 “우리는 비즈니스를 할 준비는 되어 있지만, 판매되는 물건은 아니다(We are open for business, but we are not for sale)”라는 명확한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그들은 미국의 투자는 환영하지만, 주권을 넘기는 것은 거부합니다.
Q. 이 사건이 노보노디스크의 장기적인 주가에 악영향을 줄까요?
A. 단기적인 불확실성은 해소되었지만, ‘지정학적 리스크 프리미엄’은 남았습니다. 투자자들은 노보노디스크가 덴마크 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외교 분쟁의 볼모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향후 회사는 생산 기지를 미국 현지로 더 많이 옮기는 등 ‘정치적 헷징’ 전략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 심층 분석을 위한 참고문헌 (Annotated Bibliography)
1. Foreign Affairs. (2025).
The Return of Geoeconomics: Why Trump Targets Allies.
내용 분석: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왜 적성국뿐만 아니라 동맹국에게도 경제 제재를 가하는지, 그 기저에 깔린 ‘상업적 현실주의’ 외교 노선을 학술적으로 분석한 논문급 아티클.
활용 가치: 이번 덴마크 사태를 일회성 사건이 아닌 구조적 변화로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이론적 틀을 제공함.
2. The Arctic Institute. (2025).
Greenland’s Rare Earths and the US-China Rivalry.
내용 분석: 그린란드 크바네펠트 광산의 희토류 매장량 데이터와 중국 기업의 투자 현황, 그리고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의 법적·외교적 노력을 상세히 다룬 보고서.
활용 가치: ‘자원 안보’ 관점에서 이번 관세 위협의 실질적인 동기를 파악할 수 있는 팩트북.
3. Financial Times. (2025).
Novo Nordisk: A National Champion in the Crossfire.
내용 분석: 단일 기업이 국가 경제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덴마크의 경제 구조적 취약점과, 이것이 외교 협상에서 어떻게 약점으로 작용했는지를 분석한 심층 기사.
활용 가치: 경제와 안보가 결합된 현대 외교전의 양상을 구체적인 기업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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